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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경영의 패러다임

환경경영에서 지속가능경영으로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 환경, 사회에 대한 책임이 조화를 이뤄야만 한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경제적 성과에만 매달려서는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새해부터 경영 방침을 경제적 성과 중시에서 환경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는 지속가능경영으로 전환한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도 지금까지는 환경 관련 이슈들을 기업 경쟁력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환경 뿐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새로이 추구할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환경 장벽을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인식하여 본격적인 환경경영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처럼 한편에서는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을 환경 친화적 경영에서 기업에 부여된 경제, 환경, 사회적 책임을 준수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지속가능경영으로 바꾸고 있다.

이를 위해 선진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지속가능성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있다. 필립스는 CSO (Corporate Sustainability Office)라는 경영진의 자문 기구를 두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과 함께 전사 차원에서 지속가능성이 제대로 수행되는지 사업부와 지사의 환경 담당자로부터 수집된 환경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이들의 활동을 조정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CSO는 필립스의 신사업 및 신시장 진출, 의사소통, 교육/훈련, 공시 등의 업무 영역에서 환경, 건강, 안전, 사회, 공동체의 이슈 등에 대해 검토하고 보고한다.

또한 리코와 소니 등은 사회환경 변화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련된 활동을 책임지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전담 부서를 두어 전사적인 정보 수집, 표준 및 가이드라인에 근거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개선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경제적 책임의 준수가 근본]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이익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반대로 사회적 책임이 경제적 이익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환경, 사회에 대한 책임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에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경제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역량이 선행되지 못한다면, 환경이나 사회적 책임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정부, 기업, 가계 등 국민 경제의 3가지 주체 중 유일하게 생산을 담당하는 주체가 기업이다. 소비나 분배 등의 경제 활동도 생산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국민 경제의 엔진은 바로 기업의 생산 활동이다. 따라서 국민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기업의 공익 활동은 생산 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이윤을 창출함으로써 경제적 책임을 다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고객에게는 지불한 대가 이상의 효용을, 투자자에게는 기대 수준 이상의 투자 수익을, 종업원에게는 자아 성장과 보상 등을, 지역 사회와 국가에는 고용 창출 및 납세를 통한 재정 확보 등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Fortune에서 발표하는 존경 받는 기업을 평가하는 8가지 지표 중에서도 ▲자산의 활용(Use of corporate assets) ▲재무적 건전성(Financial soundness) ▲장기적인 투자 가치(Longterm investment value) ▲제품 및 서비스의 질(Quality of pro-ducts/services) 등 경제적 책임을 강조하는 항목이 4가지나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뛰어난 경영 성과를 달성하여 경제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존경 받는 기업의 가장 기본임을 알 수 있다.

[환경, 사회적 책임 준수는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져]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준수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경영상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투자자들의 변화 움직임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기업, 환경과 인권과 소비자와 노동자를 생각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이라는 철학에 바탕하여 투자하는 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 사회책임투자)의 부상으로 인해 기업들은 더 이상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채 기업 경영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SRI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분을 평가해, 사회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기업의 투자 비중을 줄이고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의 투자 비중을 높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투자자로서 기업이 사회에 책임을 다하도록 강제하거나,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직접 투자하는 활동으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SRI는 기업의 가장 본질적인 목적을 주주 부의 극대화에 두고 있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본고장 미국과 영국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업의 외부 이해관계자 등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활동이 결국은 주주의 이익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본시장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이 대체로 영미식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 나라도 조만간 SRI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SRI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것은 기업마다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험을 기업 가치 평가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SRI의 확산이 기업 경영에 반드시 위협 요소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위험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말은 기업들이 환경, 사회 문제로 큰 곤란을 겪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지속가능경영으로 기업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더 크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업 가치가 사회적 위험에 대해 더 민감하다는 사실은 이와 같이 위협과 기회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대부분의 환경 관련 NGO들은 환경보호 운동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들의 제품에 대해 불매 운동을 하고 각국 정부의 함량 미달인 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들이 환경 친화적인 영업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포지티브 전략을 내놓는 환경 NGO의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기업들이 환경 친화적인 정책을 세우고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동시에 기업의 수익성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힘을 모으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에 발맞추어 이제 우리 기업들도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 초 전경련의 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 기업의 66.7%가 사회공헌 활동을 현재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사회공헌 활동의 확대 이유로는 사회적 책임 이행(53.3%), 이미지 제고(38.7%), 영업실적 증가(5.3%), 사회의 압력 및 비난 회피(1.3%) 등이었다.

[사회적 책임을 넘어 사회적 리더십으로]

그러나 <Good Business>에서 Steve Hil-ton과 Giles Gibbons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책임은 단지 여정에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일 뿐이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선진기업들은 이미 사회적 책임을 비즈니스의 기본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으면 기업 내,외부로터 저항에 부딪히게 되지만 이행한다고 해서 이윤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할 수는 없는 위생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긍정적인 사회적 역할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면, 사회적 책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사회적 리더십이란,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을 이용하여 세상을 바꾸는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발전적인 과정이며, 기업이 진실로 책임감 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활동을 열심히 홍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중은 기업이 자신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 몇 가지 좋은 사례만 끄집어 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사회적 리더십을 실질적으로 보여 주고 소비자의 직접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업 정책에 부합하는 사회적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의 정책이 환경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면, 기업만 그 책임을 지려 하지 말고 소비자들도 환경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유업체의 경우 보다 환경 친화적인 자동차를 이용할 것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인다거나, 소비자들이 주유할 때마다 자전거 혹은 버스•기차표로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을 나누어 줄 수도 있다.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역시, 가능하다면 휘발유를 적게 쓰는 것이 최선이고 차선책으로 휘발유가 필요하다면 자사의 제품을 선택해 달라는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기업이 환경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영국의 휴대전화 서비스 회사인 BT는 1990년대 후반 사회적 프로젝트에 투자한 활동을 알리는 TV 광고를 내보냈다. 그러나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기업인지 홍보하는 것은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데 큰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고에서는 육아 문제를 부담하고 있는 여성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유용한 정보를 얻고 양육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제안한다. BT가 양육 기관을 원조하는 것을 사회적 책임이라고 한다면, 양육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높이고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은 사회적 리더십의 예이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로 지속가능경영의 성과 전달]

지난 13일 이정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은 <기업 투명성 제고와 회계제도 개혁>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재무보고서에 기업들이 소액 주주의 이익 뿐 아니라 환경과 복지 등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반영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에게 자본이 우선적으로 배분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재무보고서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동안 환경, 사회적 책임을 공시하려는 노력으로는 일부 기업들이 환경 회계를 통해 환경경영에 소요된 비용과 이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측정하여 환경보고서를 발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기업의 환경 성과에 국한하지 않고, 재무적인 성과와 더불어 환경, 사회, 보건 안전 등 각 분야의 사회적 성과를 지속가능성이라는 잣대로 통합하고 있다. 재무 성과를 사회적 성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재무 성과가 가지는 한계를 사회적 성과로 보완함으로써 경제, 환경, 사회적 책임의 조화 여부를 보다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단체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는 <GRI 2002 Guide-lines>에서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을 ▲비전과 전략 ▲기업과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대한 개관 ▲지배 구조와 경영 시스템 ▲색인 ▲성과 지표의 5가지 영역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핵심인 마지막 영역인 성과 지표는 ▲경제적 책임 ▲환경적 책임 ▲사회적 책임의 세 가지 분야로 다시 나뉘게 된다.

경제적 책임은 직접적 영향과 간접적 영향으로 나뉘어 ▲고객 ▲공급자 ▲종업원 ▲자본 제공자 ▲공공 부문 등 총 5개 항목이 포함된다. 환경적 책임에는 ▲원재료 ▲에너지 ▲수자원 ▲운송 등의 10개 항목이 포함되며, 사회적 책임은 ▲노동 ▲인권 ▲사회 ▲제조물 책임 등으로 나뉘어 총 21개 항목이 포함된다. GRI는 이 36개 항목별로 핵심 지표와 추가 지표를 구분하여, 각 지표별로 공시의 중요성을 표시하고 있다.

필립스는 올 해 처음으로 감사보고서와는 별도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자신들만의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경제•환경•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필립스가 이와 같은 3가지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전개하고 있는 현재의 활동과 향후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는 지속가능경영의 바탕이 되는 지속가능성 정책을 포함하고 있는데, 지속가능성이 모든 필립스 경영의 핵심 요인으로 경영진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사항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지속가능성 정책과 이에 따르는 행동들은 이해관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검토하여 수정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의미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며 ▲신뢰를 구축하고 유지하며 ▲기업 내,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협업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한다.

이미 ISO 등에서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국제적인 표준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상, 지속가능경영은 우리 기업들이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피할 수 없거든 즐기라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적 리더십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출처) LG경제연구원 / 고재민 / http://www.lgeri.com/2004/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