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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매니저	작성일	2005-11-04 오전 9:20:00
조회수	7114
평전 삼국지와 제갈공명의 심서(1)

안녕하십니까? 중국여행기를 올리던 묵계입니다. 중국여행기는 이 정도에서 막을 내리고(좀더 정리한 후에 다시 시도하겠습니다) 비지니스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을 위하여 유명한 전략가 제갈공명의 심서에 평을 달아 올리겠습니다. 옆의 의전통에 마침 게재가 되어 제가 하고있는 작업과 관련성이 있을까 하고 가 보았더니 다행히 그런 것 같지는 않더군요. 의전통님께 실례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용기를 내고 도전해 봅니다.
제갈공명의 심서는 음부경, 소서와 더불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국가경영과 전략에 활용하느냐를 논하는 중국의 3대심서에 속합니다. 관심가져 주십시오. 물론 당연히 잘못된 부분은 질책해 주시구요.

1. 兵權

夫兵權者는 是三軍之司命으로 主將之威勢라.
將能執兵之權이면 操兵之要勢하고而臨群下하니
譬如猛虎ㅣ 加之羽翼而　四海러니 隨所遇而施之라.
若將失權이면 不操其勢러니
亦如魚龍脫于江湖하야 欲求游之勢로 奔濤　浪이니 何可得也리오.

무릇 병권이란 삼군의 운명을 책임지는 대장의 위엄과 힘을 말한다.
兵權이란 말이 나오니 문득 술자리에서 甁權을 잡고 휘두르는 호주가의 모습이 생각난다. 술병을 잡은 사람 마음대로 라고 선언하고 나서는 상대의 주량이나 사정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한잔 받지 않으면 마치 졸장부나 배신자 또는 의리 없는 놈이라고 몰아붙이는 그의 모습에서 전쟁터의 맹장이 연상되지 않는가? 그의 역할에 따라 그 날 술자리의 분위기가 좌우되니 甁權이나 兵權이나 한가지다.

장수가 병권을 잡고 있으면 군대를 부리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여러 부하들의 동태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맹호가 날개를 달고 사해를 누비는 것과 같이 가고 싶은 곳은 마음대로 가고 하고 싶은 짓은 모두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장수가 병권을 잃어 버리면 그 권세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게 되니 역시 마치 물고기가 강에서 벗어나고 용이 호수를 떠난 것과 같아서, 힘차게 헤엄칠 수 있는 세를 얻어서 거센 파도를 헤치고 유유히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여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위대한 제갈공명은 승리의 첫 번째 조건으로 지휘관의 권한을 강조하고 있다. 조직의 관리자가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느냐의 여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부하가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서야 전쟁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공명은 이 문제를 權, 威, 勢라고 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權은 저울의 추를 의미한다. 물건의 무게를 다는 도구로 공정함의 상징이다. 역시 힘의 원천은 공정한 룰에 의한 관리에 있다. 자의로 룰을 확대, 축소, 왜곡하는 지휘자가 점차 힘을 잃어 가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지휘자가 權의 의미를 바로 새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국지에는 룰을 집행하는 몇 가지 장면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압권은 조조이다.
전쟁으로 인한 백성의 어려움을 걱정했던 조조는, 작전 중에 백성의 생업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군령을 내린다. 그런데 맙소사 자신이 탄 말이 행군을 하다가 놀라서 보리밭으로 뛰어 들고 말았다. 그는 조심스레 말을 보리밭에서 끌고 나와 법률담당 보좌관을 불러 이런 경우의 처벌규정을 묻는다. 대답은 사형이었다. 모두 조조가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지켜보는데 놀랍게도 자신의 칼을 뽑아 머리카락을 잘라 버리는 게 아닌가? 조조다운 삽상한 이벤트다. 백성들에게는 어진 지도자로, 내부조직에는 엄격한 지휘관으로 이미지를 굳히는 순간이다.
혹자는 이를 조조의 의도적인 퍼포먼스라고 혹평한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멋진 장면이 아닌가?

그러나 옛날에도 權은 반드시 조조처럼 제대로 쓰지는 않은 듯하다. 부정적 의미로 權道라는 말이 있는데 正道 또는 王道에 대비하여 邪道 또는 覇道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아마도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속담처럼 그때도 저울을 달 때 저울추를 잡은 사람 마음대로 였나 보다. 그 비아냥이 權의 또 다른 파생적 의미를 가지게 된 배경이 아닐까 한다.

威는 權에 비하여 다소 네거티브한 의미이다.
협박하고 윽박지르는 무지막지한 폭력이 연상되는 글자이다. 자전을 찾아보면 威는 계집女부에 있다(戊+一+女). 힘을 적용할 대상을 온순한 여자같이 되도록 무력으로 짓눌러 버린 모습이다.
군대는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요인의 하나인 폭력 중에서 으뜸가는 수단이다. 존재하는 자체가 이미 상대에게는 공포감을 준다. 이른바 통치의 양대 축을 "엿과 채찍"이라 한다면 채찍이 威이다. 그리고 威는 강자만이 활용하는 수단이다.

삼국지에서 이러한 威를 과시하는 최고의 장면은 赤壁大戰을 앞둔 조조군의 기세이며 그 기세에 짓눌린 상대는 유비와 손권이다. 자칭 백만대군을 이끌고 손권과 유비를 제압하고자 출동한 조조군을 맞이하는 유비와 손권 양측의 공포가 삼국지에는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가끔 협박하는 북한의 피바다 발언에 시중의 생필품이 고갈되는 오늘날 남북의 대치상황을 생각해 보면 당시에도 적의 침입을 앞둔 유비와 손권의 공포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폭력의 상징인 군대는 역시 내부관리도 폭력적이다. 폭력으로 단련된 군인은 적에게도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훈련과 철저한 군율을 통하여 장군의 威는 폭력의 가능성을 항상 부하들에게 보여준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공명은 권과 아울러 위도 장수가 병권 장악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다.

勢는 권과 위의 조화에 따라 생기는 역동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세요, 권위요, 힘이요, 활동성이요, 사기이다. 병권 장악의 요체는 곧 勢의 창출여부 이다. 공명은 세의 구축에 성공한 장군의 형세를 맹호가 날개를 달고 천하를 누비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천군만마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부리는 병권을 장악한 장수의 모습으로 이렇게 그린 것이다. 그리고 병권을 잃은 장수를 물에서 벗어난 물고기와 용에 비유하면서 그 애처러움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병권장악을 위한 공명의 노력을 삼국지를 통하여 살펴보자.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새로이 참여한 약관(弱冠)의 공명에게, 유비군의 구주류인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탐탁지 않은 태도로 일관하자, 그는 구주류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 줄 결심을 한다.

당시의 판세는 형주(荊州)의 유표(劉表)가 늙고 병들어 후계자선정 문제로 내부갈등이 심각한 가운데, 유비는 유표에게 의탁하여 겨우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조조가 강남정벌의 요충지인 형주 공략에 나서자 유비의 야심을 경계하던 유표의 처족들이 은근히 유비를 조조와의 싸움터로 내몬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주니 고마웠던 유비는 스스로 유표에게 조조군에 대한 수비역(守備役)을 자원하여 신야성(新野城)으로 간다. 눈치밥 먹고 있던 재벌회사의 유능한 사장이 어려운 회사를 하나 맡아서 독립해 나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조조군의 하후돈(夏侯惇)이 10만의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 유비는 마침 어떤 사람이 보내 온 검은 소의 꼬리로 모자를 만들면서 초조함을 달래고 있었다. 마침 공명이 들어와 이러한 유비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유비는 정색하고 사과했다고 한다. 모처럼 초빙한 명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창피했던 모양인데 가히 누상촌(樓桑村)의 돗자리 장사꾼다운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던 것 같다.

공명은 이 자리에서 오히려 이런 사나이라면 자기 같은 참모가 병권을 장악하기 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한 사나이는 자신의 약점을 쉽게 보이고 유능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법이 아닌가? 유비가 모집한 신야성의 군사는 약 3천, 30배가 넘는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자신의 실력을 확실히 보여주는 기회라고 공명은 오히려 기뻐했을 지도 모른다.

일찍이 유비와 더불어 의형제를 맺고 고락을 함께 한 창업동지였던 관우와 장비는 자기들을 제쳐 두고 애숭이 공명에게 푹 빠져 있는 유비가 은근히 얄밉기도 하고 전쟁터에서 적의 졸병 하나 죽일 것 같지 않은 백면서생의 으스대는 모습이 눈꼴사납기도 해서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마침 유비가 와서 대책을 상의하자 직선적인 성품의 장비가 "물보고 싸우라고 하시오"라고 빈중거린다. 이 말은 두 동생이, 공명은 나이도 어리고 재능이나 학식이 검증된 바가 없는데도 유비가 공명을 마치 스승 대하듯 극진한 예우를 하는 것에 항의하자 유비가 설득하기를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으니 두 아우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마라"고 한데 대한 퉁명스러운 빈정거림이다.

유비의 이 말은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고사성어의 기원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가 친구간의 극진한 우정을 표현한 말이라면 수어지교는 군신간의 이상적인 신뢰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장비의 퉁명스러운 말에 유비가 정색을 하고 꾸중을 했는지, 달랬는지는 삼국지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온건한 유비의 성품으로 보아 어투는 부드럽게, 그러나 내용은 단호하게 말했을 것이다. 삼국지는 유비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지략은 공명에게 의존하고 용맹은 두 아우에게 바라니 어찌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대고 싸움을 피하겠는가?"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기반을 닦아 온 창업 멤버와, 도약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해 새로운 두뇌를 영입하고자 하는 최고 경영자의 갈등은 조직의 발전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인력이 정착에 실패하면 조직의 발전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공명이 어떻게 이러한 텃세를 극복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공명은 작전계획을 유비에게 브리핑하고 관우와 장비가 아무래도 자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것 같으니 유비의 검(劍)과 인수(印綬)를 달라고 한다. 즉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포함한 일체의 병권을 위임해 달라는 말이다. 유비는 두말없이 그의 건의에 따랐다고 한다. 흔히 어렵게 인재를 등용하고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권한을 제한하는 최고경영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장면이다.

권한의 이양은 조직의 사활을 결정한다. 모든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 반드시 옳지는 않다. 그러나 권한을 받는 자가 조직내부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일 경우는 반드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단 권한 이양에 앞서 능력검증을 위한 철저한 테스트가 필요하다.
이 문제에 고심한 공명은 인재의 판정기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덛붙여 두고 있다. 이 글을 계속 읽다가 보면 탁월한 공명의 견해를 접하게 되니 기대하시기 바란다.

다시 공명의 데뷔전으로 돌아가 보자.
작전회의에 들어가기 전 장비는 관우에게 "형님 한번 들어 봅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라고 한다. 삼국지 전편에 걸쳐서 이 대목만큼 심리묘사를 자세히 해 놓은 곳이 없다.

공명은 장수들을 모아 놓고 군령을 내린다.
"박망성(博望城) 좌측에 예산(豫山)이라는 산이 있고 우측에는 안림(安林)이라는 숲이 있다. 매복장소로 적합하니, 관우는 1천의 병력을 데리고 가서 적을 기다리되, 적군이 지나가도 절대 대적하지 말고, 남쪽에서 불길이 일어나면 적의 배후를 공격하여 보급물자를 불사를 것. 장비는 안림의 뒷산에 매복하고 있다가 역시 남쪽에서 불길이 솟으면 박망성 방향에 있는 적의 보급기지를 불태울 것. 관평(關平:관우의 양자)과 유봉(劉封:유비의 양자)은 인화물(燐化物)을 준비하고 박망파 뒤에서 적을 기다렸다가 초경쯤 적이 당도하면 잽싸게 불을 지를 것." 그리고 그는 번성(樊城)에 있던 조운(趙雲)을 소환하여 적을 유인하는 임무를 맡기고, 유비는 응원부대의 지휘를 맡겼다.

성격이 급한 장비와 고지식한 관우가 적을 유인하는 역할로 적절지 못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같은 신참인 조운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공명같은 사람이 단순히 한두가지 관점에서 역할분담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전쟁에서 최고의 영예는 첫 번째 적과의 교전에 임하는 선봉장이다. 야구에서 톱타자 역할을 하는 선봉장은 가장 승률이 높은 장군에게 맡겨진다. 그는 선봉장으로서의 공로를 구주류인 관우와 장비에게 부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자기를 믿지 않는 그들이 혹시나 자기를 믿지 못하고 전략을 어기는 과오를 저지를 지도 모른다는 신중함이 고려된 배치였을 것이다.

삼국지에는 전투의 형상이 몇 가지의 유형으로 나뉘어 지는데 가장 많이 묘사된 것이 장수끼리의 결투다. 어느 한 쪽의 장수가 이기면 진 쪽은 급작스럽게 무너진다. 두 번째 유형은 매복과 유인으로 적을 함정에 빠뜨려 깨뜨리는 방법이다. 객관적 전력이 약한 쪽에서 많이 쓰는 전술인데 횟수로 공명이 가장 자주 활용하였다. 세 번째 유형은 자연을 이용한 방법이다. 수공(水攻), 화공(火攻) 등이 여기에 해당되며 심지어 날씨와 바람을 이용하기도 한다. 적벽대전은 이러한 모든 전투 유형과 외교(外交), 선전(宣傳), 첩보(諜報), 이간술(離間術) 등이 총동원된 입체적인 전쟁으로 삼국지 중 압권이다. 뒤에 이 이야기는 계속되니 그 때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공명이 조운에게 선봉을 맡긴 것은 조직내부의 역학구조를 재편할 의도였음이 짐작된다. 실제 그는 조운을 아주 신임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중용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조운을 유비 곁에 두고 관우와 장비를 외지 근무로 돌린다. 적벽대전이 끝나고 형주를 손에 넣게 되자 관우를 형주의 수비역으로 파견하였는데 나중에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관우가 죽을 때까지 다시는 관우와 유비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또한 촉(蜀)을 차지하는 작전에도 관우는 참여하지 못한다. 만화가 고우영선생은 둘 사이의 은근한 라이벌 의식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으니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란다.

둘의 묘한 갈등이 싹튼 계기는 바로 이 유명한 공명의 화려한 데뷔전 박망파 전투 작전 회의였을 것이다. 그 작전회의장을 엿보자.
공명의 지시가 끝나자 관우가 묻는다.
"우리는 나가 싸우는데 군사(軍師)는 무엇을 하는가?"
"나는 신야성을 지킬 것이오" 라고 공명이 대답하자 장비가 큰 소리로 웃으며
"우리가 적과 싸우는 동안 너는 편안히 집이나 지키겠다고?"라고 비웃었다.
그러자 공명이 맞대응 하였다.
"주군의 검인이 나에게 있다. 명을 어기면 목을 벤다."
이런바 내부갈등이 첨예화되는 순간이다.

삼국지의 작가는 이 묘사에서도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관우가 공명을 "군사(軍師)"라고 공식적인 직함을 부른 반면 장비는 "너"라고 부른다.
솔직 담백한 사나이와 강건한 원칙론자의 대비이다.
솔직한 사람은 불만도 솔직히 표현하지만 마음을 허락하는 것도 빠르다. 그러나 원칙론자는 개인적인 불만이 있어도 원칙이라면 참는다. 대신 한번 품은 사감(私感)은 결코 쉽게 잊지 않는다. 공명은 솔직하고 격정적인 장비보다는 좀처럼 헛점을 보이지 않는 관우가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유비가 두 아우를 꾸짖는다.
"장막(帳幕)안에서 젓가락으로 계책을 그려 천리 밖의 전쟁을 이긴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는가? 두 아우는 군사의 명에 복종하라"
장비가 비웃으며 나가자 관우도 "그 계책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두고 보면서 나중에 틀리면 그 때 따져도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자기 임무 지역으로 갔다.
모두 전투지역으로 떠나자 공명은 승전 축하파티까지 준비했다고 하니 대단한 자신감이다.

전투는 공명의 작전계획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삼국지 원전에는 모두 공명에게 능력을 인정하고 이 후부터는 그의 작전을 충실히 따랐다고 한다. 관우와 장비도 공명의 작전능력에 감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우는 작전능력은 인정해도 공명의 모든 것이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오만하고 굽힐 줄 모르는 자존심이 그리 쉽게 꺽여질 리가 없다. 장비는 담백한 사나이답게 너무도 신기해하며 진심으로 공명의 능력을 인정했으리라. 박망파의 전투 이후 장비는 한번도 공명의 작전명령을 어긴 적이 없다. 그러나 관우는 생각이 틀릴 때는 따르지 않았다.

공명의 기본 전략은 정족지세(鼎足之勢)이다.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라고 하는 이 전략은 통일전략(統一戰略)이 아니라 현상유지전략(現狀維持戰略)이다. 따라서 힘의 균형이 성공의 요체이다. 손권(孫權)과는 우호관계(友好關係)를, 조조(曹操)와는 대립관계(對立關係)를 유지하는 것이 그 골자이다.
따라서 유연한 외교적 대응이 이 전략을 성공하도록 하는 핵심적 요인이 된다. 공명은 이 점을 몇 차례 관우에게 주지시키고 다짐을 받는다. 그러나 이 자존심 강한 사나이는 그만 오만함으로 오(吳)나라와의 전쟁을 일으키고 죽음을 맞게 된다. 관우가 결코 공명의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증거이기도 한 이 사례는 전략의 수립과 수행이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그것도 뒷 얘기다.

아무튼 박망파 전투 이후 공명은 완벽하게 병권을 장악한다. 주군인 유비의 깍듯한 대접과 강한 충성심으로 무장된 맹장(猛將)과 재사(才士)들의 복종으로 그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쉬어가는 의미에서 어떤 이가 박망파의 승전을 노래한 시 한 수를 감상하고 넘어가자.
博望에 相持用火攻하니,
指揮如意笑談中이라.
直須驚破曹公膽하니,
初出茅廬第一功이라.
박망파에서 서로 대치하여 화공으로 용병하니,
지휘하는 것이 뜻대로 되어 웃고 이야기하듯 하였으리.
이것으로 드디어 조조의 간담이 놀라 찢어지니,
초려에서 나와 첫 번째 공을 세웠네.

아마 공명은 전쟁의 승리보다 자신이 병권을 확실히 장악한 것이 더 기뻤으리라. 시를 쓴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던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즐겁게 웃는 공명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가 만약 조조를 주인으로 선택했다면 전권을 위임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 능력이 탁월한 조조는 참모의 건의를 받지만 스스로 결정하는 권위주의형 리더쉽을 가진 사람이다. 따라서 참모는 참모일 뿐 그 이상의 권한을 결코 위임하지 않는다.

실제 공명은 초야(草野)에 있으면서 천하의 영웅들을 견주어 보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볼 기회를 노리고 있던 그는 주위의 추천을 받아 오(吳)나라의 손권을 만나보기도 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삼대에 걸쳐서 기반을 닦아 온 오나라에는 훗날 그의 숙적(宿敵)이 된 주유(周瑜)를 비롯한 기라성같은 인재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자신의 입지가 어렵고 탄탄한 강동의 경제력과 양자강이라는 천혜의 방어선을 배경으로 천하통일의 야망보다는 현상유지에 뜻을 두고 있다고 판단하여 친형 제갈근(諸葛瑾)이 이미 오나라를 위해 일을 하고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해 버린다.

생각해 보면 공명이 유비에게 가서도 「넘버2」가 되기까지 위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힘들었는데 손권에게 갔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완벽한 권한이양이 이루어 질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에서 일하고 싶은 것은 모든 능력있는 사람들의 꿈이 아닌가? 한실(漢室)의 부흥이라는 명분(名分)과 자신의 입지(立地)를 확보하기 좋은 환경, 그리고 강력한 상대와 겨루어 보고 싶은 승부욕(勝負慾)이 유비의 삼고초려와 절묘한 결합을 하여 공명을 삼국지의 무대로 끌어낸 것이다.

그는 눈물겨운 충신의 글로 극찬(極讚)받는 출사표(出師表)에서 삼베옷 입고 농사지으며 난세에 목숨이나 부지하려 하였을 뿐 결코 제후들의 앞에 나아가 영달(榮達)을 구하려 하지 않았는데 유비가 세 번이나 찾아와 간청하여 마지못해 세상에 나왔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재로 공명은 그렇게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여행을 하면서 전쟁의 참화(慘禍)를 보았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조조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에게 조조라는 인간이 가진 한계를 알게 하였고 죽을 때까지 미워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유비에게로 가는 것이 옳을까는 망설였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호(號)를 와룡(臥龍)이라고 불렀는데 잠자는 용(龍)이라는 뜻을 가진 이 호는 그의 야심을 나타낸다. 겸양(謙讓)이 지고한 선비의 자세로 여겨졌던 탓으로 자신을 미화시킨 표현일 뿐이다.

병권장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공명의 출사(出仕)로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자신이 일할 곳을 찾는데 적어도 이 정도는 고심(苦心)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길게 끌었다

한줄답변

문태영 :	세월은 수천년 흘러도 인간사 본질은 크게 다른것 같지 않은데.......(11/05 (15:02))
김현일 :	흠... 좋은글, 잘읽었습니다.(11/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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